대림미술관의 폴 스미스 전을 보느니...
차라리 홍대 KT&G 상상마당 2층의 전시장에서 열리는 '스페인 드로잉'展을 보는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두 전시의 성격이 전혀 비교대상이 아니므로 이런 말을 하는게 이치에 맞진 않습니다만...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전시였습니다.
KT&G 상상마당에서 그간 전시해온 프로그램들이 딱히 저희 취향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아시겠지만 이곳은 그닥 큰 전시 공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론 아주... 깊은 인상을 받은 전시였네요.
시간되시는 분들은 한 번 꼭 들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단 하루도 선을 그리지 않은 날이 없다'.
플리니우스를 작가로 간주한 인용.
아... 뭔가 강렬한 포스가 입구에서부터 느껴집니다.
내부 사진 촬영 가능합니다. 플래쉬는 안되구요.(당연!)
그리고 작품... 제발 손대지 맙시다.
뭘 그렇게 눌러봐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 많으세요?
전시보는 짧은 시간동안 '작품에 손대지 말아주세요'라는 스탭의 말이 네 번이나 들렸다구요...
좌로부터 이케아 시리즈, 자라(사라) 시리즈, 디즈니 시리즈, 텔레포니카 시리즈.
오른쪽으로 오스까르 세꼬의 연작이 보입니다. 아...!!!
Oscar Seco (오스까르 세꼬)의 '무제. 하늘의 무너짐' 연작들.
모두 2010년작.
섬찟함을 희화화하면서도 메시지의 진중함을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배가시키는 이 놀라운 능력.
이 작품들 앞에서 정말 감탄했습니다.
Juan Angel Gonzalez (후안 앙헬 곤살레스)의 시간 시리즈.
작품별로 10분, 5분, 23분, 8분등의 시간이 붙습니다.
하나하나의 작품이 모두 흘러가는 시간을 품고 정지한 듯 보입니다
작품의 의미도 의미겠지만 이렇게 벽에 걸어놓으니... 인테리어의 효과로서도 대단하다는(에혀... 기껏 생각한다는게)...
Abraham Lacalle (아브라함 라까예)의 '고르막 맥컬티, 피의 자오선'.
아, 이 작품들은 내용을 좀 알았음...했어요.
라까예는 스페인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이죠. 문학과 회화를 결합한 작가로도 유명하다는데
저 문장의 의미를 잘 모르니 답답하더군요.-_-;;;
Sofia Jack (소피아 잭)의 '시리즈. 그림자 라인(여행)'.
대단히 단아하고 절제된 소품같은 느낌이지만... 자세히 보시면 결코 가벼운 작품이 아닙니다.
Jesus Zurita (헤수스 수리따)의 '노숙' 연작.
Luis Salaberria (루이스 살라베리아)의 '눈 속의 부드러운 것'
Juan Zamora (후안 사모라)의 '그림자 연극' 연작.
원 작품에 저 그림자는 없습니다.
이렇게 영상이 투영되면서 그림자가 나타나는데요.
그냥 정지된 것이 아니라 움직입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눈물이 나오는 영상도 있고...
이게 대단히 묘한 느낌이 듭니다. 외로움과 위트가 동시에 느껴지더군요.
http://www.juanzamora.com/
후안 사모라의 웹사이트에서 다양한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원화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플래쉬를 올리는 방식은 동일합니다.
다만... 로딩이 무척 오래 걸려요.-_-;;;
Santiago Talavera (산띠아고 딸라베라)의 '탐욕의 섬'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지는...
아주 큰 스케일의 작품.
아름다운 색감들은 70년대 영국의 드로잉 디자이너들을 연상케하는데, 디테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보다 더 세밀하다고 해야할까요.
*
드로잉은 현대 미술에서 언제부터인가 '습작'의 개념처럼 굳어진 느낌이 듭니다.
그간 드로잉전을 종종 보긴 했는데 언제나 본 작품의 밑바탕이 되거나 순간의 느낌을 필치로 남긴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물론 일본 현대미술 작가들 중에 드로잉에 심취한 작가들이 있지만 그 작가들의 작품은 대부분 일본의 민속적 양식을
변형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마이크로 디테일에 심취해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답니다.
그런데 이 스페인 드로잉 전시는 상당히 인상적임을 넘어서 하나의 독보적 장르로서의 드로잉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현대미술에서 드로잉의 위상은 매우 낮지만 이 전시를 보면 이 또한 그저 사람들이 구분해놓은 포지셔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꼭 들러볼 만한 전시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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